2016년, 내가 골키퍼 장갑과 함께한 지 벌써 10년째이다. 초등학교 4학년, 아빠와 함께 무지개 스포츠에 가서 19000원짜리 골키퍼 장갑을 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나는 그 장갑이 계속해서 그 튼튼한 형태를 유지한 체 내 손을 감싸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씩 장갑을 교체해 주어야만 했다. 골키퍼 장갑은 노력과 함께 닳아가는 연필과도 같은 것이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명을 다해가는 장갑을 마주하는 것은 친구를 보내는 듯 하나의 큰 아쉬움이지만, 또한 그만큼 내가 공을 막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음을 의미한다.
고군분투를 함께 할 장갑을 선택하는 것은 장갑의 가격 상한선을 두고 엄마와 줄다리기를 하게 만든다, 그렇게 정해진 상한선에서 나는 가장 쓸 만한 것을 골라야 했다. 그러면서 어떤 장갑들이 가성비가 좋은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성비가 좋아도 기대할 수 있는 성능에는 한계가 있다. 가격대 차이가 만드는 성능의 벽은 분명히 존재한다.
“장인은 장비 탓하지 않는다. 무슨 장갑을 쓰는지가 뭐가 중요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캐칭 능력에 골키퍼 장갑이 영향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손바닥 부분의 라텍스가 캐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텍스 두께가 2mm밖에 안 되는 장갑이 있는 반면에 5mm도 모자라 메모리폼이 4mm 추가된 장갑도 있다. 라텍스가 두꺼울수록, 공을 잡을 때 공이 튕겨나가지 않고 장갑에 착 들어온다. 선수용 장갑은 공이 장갑에 붙는 느낌까지 난다. 이 때문에 골키퍼라면 좋은 장갑을 욕심낸다. 물론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추운 겨울에도 공을 막기 위한 고군분투는 골키퍼장갑과 함께 계속되었다. 나와 친구들은 한파 주의보나 경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를 했고, 그때마다 나는 골키퍼 장갑을 꼈다. 한 가지 괴로운 점이 있는데, 그런 추운 날에 공을 막고 있으면 손이 점점 얼어온다는 것이다. 장갑을 끼고 있으니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좀 따듯해보겠다고 정말 별의별 노력을 다 했다. 골키퍼 장갑 안에 핫팩으로 따듯하게 덥혀 놓은 면장갑을 껴보기도 하고, 축구하기 전 날이면 장갑을 아랫목에 넣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착용하지 않을 때면, 장갑이 차가워지는 걸 막기 위해 항상 옷 속에 품고 있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마 올해의 겨울에도 골키퍼 장갑과 함께하기 위한 그 노력들을 반복할 것이다.
2016년은 장갑과 10주년을 기념하는지 장갑과의 인연이 유난히 깊은 해인 것 같다. “신입생의 다짐” 칸에 써낸, “포카전 무실점”을 실현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합숙훈련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55일의 훈련기간 동안 모두가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과 싸워가며 훈련했다. 우리는 탈수증을 방지하기 위해 식염을 먹고, 체감온도가 40도를 넘어가도 연습을 쉬지 않았다. 그렇게 훈련한 결과 장갑 두 짝이 수명을 다했다. 그것은 장갑이 찢기고 라텍스가 닳아서 가루가 날정도로 훈련했다는 영광의 흔적이다. 골키퍼 장갑은 단순히 공을 막는다고 해서 닳지 않는다. 골키퍼가 공을 향해 몸을 던지고 착지하는 과정에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장갑이 닳는다. 그 과정을 무수히 반복했기 때문에, 불과 55일 만에 장갑이 다 닳아 버린 것이다. 비록 포카전에서 뛰지는 못했지만,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분명히 체감한다.
얼마 전 10월 1일 한동대학교와 교류전을 했다. 나는 그날 상대 공격수들의 탄식하며 아쉬워하는 표정과 관람석에서 흘러나오는 감탄을 즐겼다. 나의 노력과 함께 닳아간 장갑들이 없었다면 그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교류전에서도 그런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나는 다시 연습할 것이고, 골키퍼 장갑은 또 닳아갈 것이다.
2016년 11월 3일. 1학년 2학기. 글쓰기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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