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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진정한 자아?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는 다른 모습을 한다. 이는 삶 속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다. 엄격 근엄 진지한 직장 상사가 집에선 다정하고 가정적인 사람일 수 있다. 이를 심리학은 페르소나(라틴어, 가면으로 번역)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페르소나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유용한 이론임이 분명하지만,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접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가면 뒤에 본질적인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가 존재하고, 그 자아 위에 상황에 맞게 다양한 가면을 쓴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진정한 자아"라는 개념을 부정해보려 한다. 자아에 여러 모습이 있을 뿐, 계층 구조를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아라는 개념을 부정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낭만적인 여행'이라는 환상을 갖게 한다. 누군가의 진정한 자아가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은 목적지가 없는 방황일 뿐이며, 자신의 모습에 실증난 사람이 에너지를 낭비할 수 있는 낭만적인 핑곗거리일 뿐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 개념이 환경을 탓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이 놓인 환경 때문에 진정한 자아의 모습이 아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현재 자신의 행동의 책임을 더는 데 쓰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원래 안 이런데, 상황이 이래서 이런 가면을 쓴 거야. 원래 나는 더 나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것이다. 잠깐 다른 가면을 쓸 뿐이라고. 이를 통해 원래의 '나'를 무결한 상태로 유지시킬 수 있다. "진정한 자아"라는 개념이 자신의 인격에 대한 자신의 기대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진정한 자아라는 개념을 인정하든 말든 표면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같은 사람이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험적으로 분명한 사실이고, 그 사실은 진정한 자아라는 것이 정말로 있든지 말든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정한 자아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기때문이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그리고 그 인정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첫 번째 차이

진정한 자아 같은 건 없고 모든 모습과 행동이 모여 내가 된다는 생각이 선행되면, 행동에 더 책임을 갖고 언행에 보다 신중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해, 매 순간의 가면이 곧 자신이라고 생각해야 가면 뒤에 숨는 행위가 불가능해지고, 자신을 가꾸는 노력이 더 촉진될 것이다. 

  

두 번째 차이

진정한 자아에 대한 고민에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과연 이런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일까?” 같은 맥빠지는 고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던지 “지금 어떻게 하는 게 올바를까?”같은 실용적인 고민에 집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