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비물질과 물질의 관계는 어떠하고 예술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물질과 물질의 관계는 어떠하고 예술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서론

           <철의 물성과 비-물성> 전시회는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물질은 철로 대표되고, 철들로 비-물질을 표현한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가들이 매우 큰 밀도를 가진 가장 물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철을 이용하여 비-물질을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익훈 작가는 주제를 표현하기위해 비-물질적인 그림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철을 사용했고. 노해율 작가는 움직임이라는 비-물질을 표현하기 위해, 이성민 작가는 아버지의 무게라는 비-물질을 표현하기 위해 철이라는 물질을 사용했다. 이번 전시의 많은 작품들 중 엄익훈 작가의 <니케>와 이성민 작가의 <피에타>, 두 작품을 이용하여 논의를 전개해보려 한다.

본론

           지금 우리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가치를 부여하고, 물질에서 가치를 찾는다. 물질과 가치를 동일하게 여기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돈에 가치를 부여하고, 돈에서 가치를 찾고, 돈을 곧 가치로 여기기도 한다. 물질에 그 물질 스스로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비-물질적인 가치를 부여하기도하고, 물질이 어떤 비-물질적인 것을 상징하게 함으로써 물질을 비-물질화한다.

 

엄익훈 - 니케

           엄익훈 작가의 니케(Nike)라는 작품에서, 어떤 특정한 형태를 가진 철 조각들을 이어 붙인 덩어리에 강한 빛을 쏜다. 그 빛과 덩어리에 의해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 작품을 보고 다음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비-물질을 물질화 시키고, 그것이 원래 물질이었다고 믿었던 것을 되돌아보고 있다.’ 승리의 여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으므로 물질세계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승리에 대한 사람들의 염원은 존재하지 않는 승리의 여신을 존재하게 함으로써, -물질을 물질화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승리의 여신이 정말 존재하는 것으로 믿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엄익훈 작가는 존재하는 것 같지만 실체가 없는 것의 대명사로 자주 쓰이는 그림자를 이용해 니케의 형태를 표현하는 것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비-물질을 물질화 했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단계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 승리의 여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단계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단계는 감상자의 시선으로 표현되었다. 감상자는 빛과 철로 만들어진 형체가 불분명한 쇠 덩어리와 니케 모양의 그림자를 다 볼 수 있으므로, 니케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신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비-물질의 것을 실재하는 것 마냥 물질화했다면, 지금은 물질적인 것을 비-물질화 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돈이다. 돈은 다른 물질과 교환할 수 있는 물질일 뿐이다. 산업화, 상업주의, 자본주의, 신 자유주의 등의 지금 사회를 지배하는 흐름은 돈을 물질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 돈과 효율성, 시장가치는 사람들이 판단을 내릴 때 가치 기준 또는 판단기준으로 작용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돈은 신이 되었다. 과거에는 신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었으며 따라서 판단의 기준이었다. 지금은 돈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었으며 판단의 기준이 되었으니, 돈이 곧 신이라고 해도 비약이 아니다. 돈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었다는 말이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장래희망은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직업들로 획일화 되었고, 학문도 돈이 되는 학문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도 대부분은 돈을 위한 공부로 귀결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 있지만, 예시를 들었 듯이 돈은 사람들의 가치기준이 되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속의 죄수들은 동굴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생긴 그림자만을 보고 판단을 내린다. 죄수가 동굴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림자를 만든 원래 사물과 광원을 볼 수 없다. 깨닫기 전까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에도 당연히 통용된다. 지금의 사람들도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알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돈이 가치기준이 되었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돈을 가치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 잘못되었는지 어쩐지 알 수 없다. 마치 과거에 신이 존재하고 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이 잘못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당시에 사람들은 알 수 없었듯이 말이다. <니케>라는 작품은 비-물질을 물질화하고 물질을 비-물질화 하며 살아가며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인지 능력의 불완전함을 신의 형상을 그림자로 나타냄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신 자유주의, 상업주의, 물질만능주의, 돈이 신이 된 세상 등의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물질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몰두하여 비-물질적인 것의 가치를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비-물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맹신하고, 수단인 물질을 목표로 전이시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들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물질화하여 눈에 보이게 함으로써 그것들의 가치를 상기시켜주거나 강조하기도 한다.

 

이성민 - 피에타

           이성민 작가의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은 아버지로 살아가는 것의 무게를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 <피에타>라는 작품은 아버지가 아이를 목욕시키려고 안고 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아이는 기절한 것 마냥 몸에 힘이 없이 순전히 아버지에게 의존해 있다. 아버지가 안고 있는 한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 나온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이 사이의 사랑과 믿음이라는 비-물질을 조각 작품으로 물질화하여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도로 물질화 된 바쁜 현대사회를 살면서 잊기 쉬운 가족간의 사랑이 지닌 가치를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결론

           엄익훈 작가는 <니케>라는 작품에서, 존재하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이 물질화 되어 실체화 되었으며 과거의 가치 기준이었던 신을 그림자로 나타냄으로써 그 대상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표현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돈이라는 물질에 비-물질적인 의미를 심어 가치기준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이성민 작가의 <피에타>는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잊기 쉬운 비-물질적인 것들을 철 조각 작품으로 물질화하였고, 관람객들은 그 작품을 보며 비-물질적인 것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2017년 5월 15일. 인문과 예술의 세계 - 예술 보고서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정한 자아?  (0) 2020.06.04
밀그렘의 복종 실험 - 권위에 대한 고찰  (0) 2020.05.31
영화 GATTACA  (0) 2020.05.31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교통사고였는가?  (0) 2020.05.31
골키퍼 장갑에 대하여  (1) 2020.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