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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EXHALATION(숨)

<우리가 해야 할 일> - 정해진 미래와 사라진 자유의지

예측기가 발명되었다. 매우 단순한 장치다. 보이는 거라곤 전구와 버튼이 전부다. 전구는 버튼이 눌리기 1초 전에 깜빡인다. 1초 후가 아니라 1초 ‘전’에 깜빡인다. 누르지 않으면 절대 깜빡이지 않고, 누르려 하면 언제나 1초 전에 깜빡인다. 그 말은 이 물건은 1초 후에 내가 버튼을 누를지 말지는 정해져 있고, 이 물건은 그걸 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미래는 정해져 있으며, 나는 정해져 있는 미래대로 행동할 뿐, 자유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사실은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눴다.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하는 사람과 절망감에 빠지는 사람으로. 


나는 어떤 부류가 될지 생각해봤다. 나의 행동과 의지가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에 실의에 빠진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한들, 내가 미래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달라질 건 없는 거라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면 되는 거라고.


사회적으로는 어떤 변화가 생길지도 예상해보면, 일단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 당연해 보인다. 먼저 떠오르는 건 종교계의 혼란이다. 종교는 공통으로 권선징악을 추구한다. 악행을 일삼은 자는 기독교에선 지옥에 가고, 불교에선 다음 생에서 기구한 운명을 맞이한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없는 이상,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인간은 사실상 꼭두각시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는 법정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한 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큰 혼란이 가라앉은 후에는 다시금 이전의 생활로 복귀하리라고 예상한다.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진 후, 큰 좌절과 혼란을 겪지만 이내 곧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이성적으로는 자유라는 개념이 사라지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자유를 잃지 않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의 말을 인용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모든 것이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고 그것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조차 길을 건너기 전에는 주위를 둘러본다는 것을 알아버렸다…….우리는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에 근거해서 행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무엇이 미리 결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며 우리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유용한 이론 따라야만 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기록의 발전과 삶의 이야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록은 정확해지고 우리가 채워 넣을 여백은 사라진다. 가령, 어떤 장면을 글로 아무리 자세히 기록해도 그걸 읽는 것만으로 장면을 그대로 떠올릴 수 없다. 이것이 글의 한계이며 동시에 기억과 상상으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기록하면 그 한계와 여백은 사라진다. 하지만 사진도 움직임과 소리를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기에, 움직임과 소리는 기억으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다. 동영상으로 남긴다면 그런 여백 또한 없어질 수 있지만, 감정을 기록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 여백은 우리의 기억에 의존하여 메꿔질 수 있다. 만약 동영상보다 정교한 기록 수단이 나온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을 여백이 있다. 바로 “기록되지 않은 순간”이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삶의 대부분은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기록의 여백이며 기억의 영역이다. 우리는 기록을 참고하고, 여백은 기억으로 채워 넣으며 삶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여백이 많을수록 그 이야기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 기억은 흐려지고 왜곡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힘든 기억은 미화되어 성장의 자양분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미워한 기억은 흐려져 용서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이별했을 때의 감정은 잊히고 좋은 추억만 남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삶을 통째로 기록하는 기술이 발명되어 여백이 사라진다면, 삶이라는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이 단편에 등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의 아내는 딸 니콜을 담겨두고 그를 떠났다. 사춘기 시절의 니콜과 버려졌다는 실의에 빠진 그는 서로 더 힘들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어려운 시간을 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환점이 된 일이 벌어졌다. 평소보다 심하게 다투다가 니콜이 그에게 “엄마가 누구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당장 내 앞에서 사라져. 난 전혀 상관없어. 차라리 없는 편이 훨씬 나아.”라고 소리치고 뛰쳐나갔다. 그날 밤은 그에게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니콜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연민에만 빠져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그 후로 그는 몇 년에 걸쳐 천천히 노력하여 니콜과 화해하게 되고, 니콜의 대학 졸업식에서 서로 꼭 껴안았다. 그의 각성과 노력으로 이뤄낸 가족관계의 회복이 그의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원하는 과거의 정확한 장면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리멤’이 출시되었다. 사람들은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할 필요 없어졌다고 열광했고, 사실상 리멤이 기억을 대체하게 된다. 리멤 비평 기사를 의뢰받은 그는 리멤을 실행했다. 조금 전 일부터 재생해보니 리멤이 보여주는 영상들은 정확했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 그의 전환점인 니콜과 다툰 장면을 재생했다. 모든 것이 기억과 같았지만, 하나가 달랐다. 니콜이 그에게 했던 비난은, 사실 그가 내뱉었던 말이었다. 졸업식에서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은 니콜이 상담사를 만나 심리적으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노력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니콜이었다. 그가 믿었던 그의 이야기는 좋을 대로 편집되고 왜곡된 기억의 조합이었다. 


이 일화는 기억의 망각과 왜곡의 혜택이 사라진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망각과 왜곡은 사람들이 힘든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누군갈 미워한 감정이 흐려져 용서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이런 혜택이 사라지는 걸 생각하면 여백 없는 기록은 고문에 가깝다.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엄격하고 정확한 사실의 나열이 돼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정도 미화된 기억들로 꾸며진 사람 냄새를 풍기는 인생 이야기는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정확한 기록을 바탕으로 성찰하고 반성할 기회가 많아진다면, 미화된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삶 그 자체로 더 훌륭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망각하지 않으면, 타인의 잘못에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용서로 이어질 것이다. 힘든 시절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남의 힘듦과 고통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우리를 만들 것이다. 그런 우리는 힘든 기억을 망각을 통해 수동적으로 극복하지 않고 이해와 위로, 공감으로 능동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