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진이, 지니

<민주의 변화>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흔히들 사람은 고쳐서 못 쓴다고 한다. 몸에 밴 사고방식과 습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란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를 돌아봐도 사람이 변하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 변한 줄 알았다가도 변치 않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역시는 역시 역시군’ 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민주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극적으로 변한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 처음에 민주는 루저였다. 몇 년째 수험 공부를 하며 부모님에게 기대어 살면서도 합격할 기미도, 그렇다고 불굴의 의지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또한 자신의 분수를 알고 특별한 일을 벌이거나 휘말리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스스로  간장종지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면 위험을 무릅쓰면서 범죄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에 뛰어들면서까지 진이를 위해 희생한다. 사랑의 힘도, 우정의 힘도 아니었다. 둘은 알게 된 지 며칠 되지도 않는 사이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민주와 진이의 관계의 시작은 돈이었다. 보노보인 지니의 몸속에 갇힌 진이는 병원에 있는 자신의 몸 앞으로 데려다 달라고 민주에게 부탁한다. 처음에 민주는 거절하지만, 집에서 쫓겨나 노숙하는 신세였기에 돈이 궁해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민주가 끝까지 진이의 부탁을 들어준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진이의 몸은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의 상태에 놓여있었다. 심장이 뛰고 있는 게 기적이라 했다. 그걸 민주도 알고 있었고, 진이의 부탁을 완수하여 진이의 식이 제자리로 돌아가면 진이가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당연히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도. 즉, 변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었다. 

 

민주에겐 트라우마가 있었다. 공익요원으로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던 때였다. 참으로 말 많고 참견 좋아하는 해병대 출신 할아버지가 있었다. 하루는 노인분들 댁으로 도시락 배달을 하던 중, 그 할아버지가 집에서 본인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자전거로 이동 중이던 민주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 못 들은 척 다른 집부터 배달하러 간다. 마지막 순서로 그 할아버지 댁에 들어갔을 때, 세상과 작별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죽음의 문턱에서 민주의 자전거 소리를 듣고, 민주를 불렀던 것이다. 민주는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걸 몰랐기에 아무도 그를 탓할 수 없지만, 민주는  경험으로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간장종지쯤으로. 

 

민주의 변화를 이끈 것은 결국 그 트라우마였다. 트라우마를 극복함으로써 민주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부탁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민주 마음속의 그간장종지가 말을 걸어온다. 포기하라고. 그동안 민주는 간장종지에게 이끌려 다녔다. ‘내가 무슨.’ , ‘나 주제에 어딜 나서.’를 필두로 결국 포기하는 게 그의 사고방식이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거의 사라졌을 때가 돼서야, 그런 자신에게 실증이나 간장 종지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작은 사람으로 만드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는 도움이 필요한 진이를 모른 척하고 싶지 않았다. 해병대 할아버지에게 저지른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민주의 변화의 시작이었다. 

 

<끈질긴 삶 끝에 죽음을 택하다> 

진이는 동물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의지 한 사육사이자 동물학자였다. 가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기가 없어서 기 대신 동물에 애착을 갖기 때문이라는 차별적 인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 공부를 이어나갔다. 어려운 일이 닥친다 하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모퉁이만 바라보고 묵묵히 전진했다. 일단 모퉁이에 도착하면 모퉁이 너머는 자동으로 보이리라는 신념으로. 

 

진이 그런 성품은 어머니를 보고 배운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남기고 간 빚에 허덕이면서도, 신세한탄 한 번 없이 꿋꿋하게 진이를 키웠다. 빚을 다 갚고 모녀의 숨이 좀 트였을 때,  별안간 말기 암 판정을 받는다. 험난한 삶 속에서도 바지런히 살아왔던 그녀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삶을 놓아준다. 진이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삶을 그렇게 치료해볼 시도조차 없이 놓아준다니. 

 

그런데 진이도 이야기의 끝에서 같은 선택을 한다. 진이와 지니의 의식은 지니의 몸속에서 동화되어 하나의 자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진이는 죽기 직전인 자신의 몸을 포기하고 지니의 몸속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라도 살고 싶어 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기 직전인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 죽는 것을 택한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 끝에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두 모녀의 선택이 포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삶을 놓아준 것은 말기 암이라는 사실에 좌절해서가 아니고, 진이가 죽음을 택한 것은 보노보로 살 바에 죽는 게 나아서가 아니었다. 두 선택에 밑바탕엔 사랑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동물에 대한 진이의 사랑. 어머니는 가망 없는 연명치료에 돈을 쏟아부으며 죽으면서까지 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진이는 보노보의 몸속에서 살면서 보노보의 삶을 침해하고 싶지 않았다. 보노보의 보노보로서의 삶을 존중한 것이다. 

 

또한 진이의 선택은 트라우마의 극복이기도 하다. 과거 진이는 불법으로 포획된 보노보를 목격하지만, 구출을 시도하지도 동물보호단체에 신고하지도 않다. 불법 밀렵꾼의 보복이 두려워서. 그일 이후로 진이는 자신의 동물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사육사이자 동물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했다. 진이의 선택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동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일이었던 것이다.